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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무는 대성전의 좌우에 위치하며 대체로 孔門의 72弟子와 中國의 歷代 名賢 22位, 우리나라 18名賢 등 總 112位를 從享하는 곳이다.

건물의 규모나 양식 그리고 형태는 동,서무 모두 같다. 2벌대의 자연석 기단위에 정면 3간, 측면1간의 무익공민도리집으로 구성된 동,서무는 정면주간 2,130㎜(7.03曲尺), 측면은 2,430㎜(8.01曲尺)으로서 바닥면적은 15.53㎡(4.7坪)의 규모를 가진다. 정면의 어간에만 별도의 문설주를 상, 하인방 사이에 수직으로 세워 문얼굴을 구성한 후 2분합의 띠살문을 가설하였고 양협간은 중인방까지는 방화벽을 가설하였으며 그 위로는 환기용의 세살창을 만들어 놓았다. 측면과 배면은 모두 중인방까지 방화벽을 가설하였으며 그 위로는 흰색의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강회다짐을 하였으며 벽체에는 역대 명현들의 履歷을 족자형태로 만들어 진열하였다. 가구는 간단한 3량가로서 대량위에 동자주형의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어간의 종도리장여의 뱃바닥에는「孔夫子誕隆二千五百三十四年陰六月十八日竪柱上樑」이라는 上樑文이 기록되어 있어 이 건물이 1983년에 重創되었음을 알 수 있다.



東 · 西齋는 儒生들이 宿食과 讀書를 하던 곳으로 東齋에는 兩班의 子弟를 그리고, 西齋에는 양반이하의 子弟를 수용하던 곳이었다.

東齋는 정면 4간, 측면 2간의 규모로서 정면 4간 중 가장 우측 1간은 부엌을 구성하였고 나머지 3간 중 전면간은 퇴간으로 퇴마루를 내었다. 내부는 온돌방으로 바닥은 구들을 깔았고 우측에는 폭 2尺가량의 庫室을 두었다. 정면주간은 중앙의 2간은 2,205㎜(7.28曲尺)이고, 양측간은 2,180㎜(7.2曲尺)이며, 측면 주간은 퇴마루가 구성된 퇴간은 1,360㎜(4.49曲尺)이고, 온돌방의 폭은 2,108㎜(6.96曲尺)으로 총 바닥면적은 30.4㎡(9.2坪)이다. 창호는 정면간에만 구성하여 명륜당의 마당에 면하도록 하였으며 촤측으로 ㅂ터 1,2번째간에는 외짝의 띠살문이고 3번째간에는 2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주 출입구임을 알 수 있다.

西齋의 간살잡이와 평면의 구성은 東齋와 유사하나 내부의 바닥은 부엌의 위치에 온돌방을 꾸몄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아 동재와는 바닥의 구성에 다소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가구는 一高柱 五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측면은 풍판이 가설되어 있지 않으며 박공의 끝에는 게눈각의 조각을 하였다.



校直舍는 鄕校를 관리하며 薺亨儀式등의 여러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건물로서 주로 관리인이 기거하며 'ㄱ'字 평면형의 살림집의 형태를 가진다. 안방과 대청 그리고 건넌방 등의 구성외에 薺器를 보관하는 薺室등이 별도로 나 있는 것이 일반 살림집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鄕校에서의 內, 外三門은 양측으로 담장을 둘러 영역을 구획하여 주며 출입을 위한 기능적인 용도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로서, 生者뿐 아니라 死者 또한 출입을 한다고 보아 神門이라고도 불리운다. 외삼문은 정면3간, 측면은 1간으로 이루어지며 중앙에 안으로 열리는 2분합의 판문을 달아놓았다. 어간은 2,700㎜(9尺), 양협간은 2,400㎜(8尺)으로, 그리고 측면은 2,400(8尺)으로 주간을 잡아 어간을 1尺 넓게하였으며, 또한 중앙간의 지붕은 양협간의 지붕보다 한단 높게 한 솟을 삼문으로 하여 상징성과 권위성을 부여하였다.



능·원·묘·궁전·관아 따위의 정면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 홍삼문이라고도 한다. 9m 이상 되는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없이 붉은 살을 박아 놓았는데 그 중간에는 태극문양을 그려 넣었다.




下馬碑는 “大小人員皆下馬”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향교 앞을 지나 갈 때는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말에서 내려라” 라는 뜻을 가진 비석입니다. 공자님과 선현들을 모신 신성한 교궁이고 선비들이 공부하는 학당이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향교 앞을 지나가라는 의미가 있는 비석입니다. 善政碑는 선정을 베푼 지방 관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운 비석으로 옛 인천부사들의 선정내용이 비에 새겨져 있습니다.